그람시옥중수고

안토니오 그람시,《옥중수고》


안토니오 그람시,《옥중수고》
〈정치편〉
1장 : 현대의 군주
* 이 장의 목표는, ‘현대의 군주’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당(공산주의 정당)은 어떠한 것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그람시에게 마키아벨리는 공산주의의 선구자였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현대의 군주론은 마땅히 그 일부를 자코뱅주의를 위해 할애해야 한다. 자코뱅은 ‘국민적-민중적’ 집단 의지를 일깨우고 전개하는 모습을 독창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조숙한 자코뱅이었다.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 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아주 구체적인 환상이며, 제각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집단 의지를 일깨우고 조직하는 정치 이념의 본보기다. <<군주론>>의 결론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민중과 함께 섞이고 민중이 된다. 이때의 민중은 마키아벨리 자신이 지금까지의 주장으로 설득한 민중이다. <<군주론>>은 정치적 선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대의 군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는 없다. 그것은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 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적 사회요소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정치 정당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공산주의 정당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현대의 군주는 국민적-민중적 집단 의지를 형성함과 동시에 지적, 도덕적 개혁의 선포자이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에서의 <<군주론>>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마키아벨리는 무언가를 폭로했다. 그런데 그 폭로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마키아벨리는 행동을 촉구하는 사상가였다. 자신의 목적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그는 요즘의 상식으로 보면, 역설적이게도 가장 엉성한 마키아벨리주의자인 셈이다. 마키아벨리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그의 정치학은 절대적 국민적 군주국의 조직을 지향하는 당대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권력 분립과 대의제의 맹아가 발견된다. 그의 ‘흉포함’은 봉건 세계의 잔재를 향한 것이지 진보적인 계급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시민군에 대해 언급한 것의 목적은 도시와 농촌의 연결이었다.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읽으며 국민 혁명의 단초를 발견한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민중, 즉 당대의 혁명적 계급을 염두에 두고 썼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러면 가장 효율적인 지도와 지배가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정당이 존재하려면 세 가지 기본요소가 모여야 한다. 1) 일반적, 평균적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중적 요소, 그러나 이들만으로 정당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중요한 응집적 요소, 장군이 필요하다. 장군을 만드는 것보다 군대를 만드는 것이 쉽다. 3) 중간적인 요소, 앞의 두 요소를 연결하고 각 요소 사이의 비율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정당을 세움에 있어서 지도자와 추종하는 대중 사이에 동질성이 확보되게끔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지도자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정당’으로 옮겨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의 켄타우로스(半人半馬)가 혁명 정당이 갖추어야 할 이중적 전망의 상징이다. 당은 ‘강제와 동의’, ‘권한과 헤게모니’, ‘폭력과 교화’, ‘선동과 선전’, ‘전술과 전략’이라는 두 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2장 : 국가와 시민사회
2장에는 케사리즘(Caesarism), 진지전, 시민사회 등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서 파시즘의 성격, 서구에 적합한 혁명 전략, 국가이론 등이 설명된다.
보나파르티즘은 적대 계급의 조정자를 가장한 독재 체제로 케사리즘과 유사하긴 하지만 같지는 않다. 케사리즘은 두 개의 기본적 사회세력 사이의 타협을 가리킨다. 케사리즘이란 갈등하는 세력이 파국의 상황으로 치닫는 과정이며, 결국 상호파괴로만 종식될 수밖에 없는 잠정적 균형 상태를 뜻한다. 결과론적으로 케사리즘이 가져올 파국의 상황이 진보적일지 반동적일지 알 수 없다. 헤게모니의 약화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데 그중 하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카리스마적 신의(神意)를 지닌 듯한 인간에 의해 대표되는 알려지지 않았던 세력들의 활동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정치적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어떤 위대한 인물에게 중대한 임무를 기꺼이 위임하는 것이다. 히틀러주의의 팽창을 기억하라. 이것은 개인이 아닌 의회 다수 세력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모든 연립 정부는 케사리즘의 첫 단계다. 지배 세력에게는 진보적 세력의 허약성을 존속하는 것이 권력 유지의 관건이다. 따라서 현대에서 케사리즘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드레퓌스 사건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 사건이 케사리즘으로 귀결되지 않고 오히려 반대 상황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드레퓌스 사건이 초래한 결과는 혁명적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반동적이지는 않았다. 지배 블록 내의 어떤 잠재 세력이 지배 블록의 반동화를 저지했다. 즉, 구 사회 속에는 반동적인 것에 반대하는 세력이 잠재해 있는데, 그것이 역사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 내재적 힘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의 적을 대처하는 방식이 무능력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당들의 허약성은 선동과 선전 사이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 정당이 계급을 대표하기는 했지만 그 계급을 강화하고 보편화하지는 못했다. 계급 연구가 없는 정당이 지도자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 권력은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만다. 즉 관료제가 강화된다. 국가가 보나파르티즘적 정당과 다를 바 없어진 것, 그것이 관료제다.
군사 작전과 마찬가지로 정치 투쟁의 세 종류는 기동전, 포위전, 진지전이다. 기동전이 효과적이었던 경우는 참모부가 관료화되어 복무 태도가 무뎌진 나라들에서였다. 트로츠키는 여러가지 점에서 정면 공격이 단지 패배로 이어질 뿐인 시기에 기동전을 주장했다. 트로츠키가 실패한 것은 이 문제를 문학적 형식으로만 다루었지 실천적 지도(指導)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 적합한 것은 진지전이 주가 되는 방식이다. 시민사회라는 상부구조는 근대적 전쟁에서의 참호체계와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진지전은 단순히 참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장의 군대 후방에 위치한 영토의 조직적, 산업적인 전(全) 체계로 이루어진다. 진지전은 장기전이며 보급전이다. 전쟁의 태세를 갖춘 다양한 인간들의 능력, 대중적 세력이 필요하다. 정치 분야에서 진지전의 승리는 실로 결정적이다. 진지전의 승리 뒤에는 국가에 관한 문제가 뒤따른다.
마키아벨리로 다시 돌아가보자. 마키아벨리는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에 관한 책을 쓴 것이지 유토피아에 관한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인간을 통치하고 인간에게서 영속적인 동의를 확보하여 위대한 국가를 창건하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를 읽으면 그 또한, 경제적 평등 없이는 완벽하고도 완전한 정치적 평등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와 통치(government)를 동일시하는 풍토 속에 살고 있는데, 이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혼동이다. 국가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를 합친 것이다. 국가의 목표는 바로 국가 자신의 종식과 소멸이라는, 다시 말해 정치사회를 시민사회로 재흡수한다는 원칙의 체계를 창출하는 일이다. 국가숭배(Statolatry)는 관료에 의한 지배를 가리킨다. 그것은 시민사회를 위한 교육의 출발점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방치되거나 광신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비판되어야 한다.
3장 : 미국주의와 포드주의
3장은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생산방식이 유럽에 미친 충격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봉건의 잔재가 없었다. <미국주의와 포드주의>의 근본적 전제는, 혁명적인 노동계급 운동이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서 후퇴와 패배의 국면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미국주의와 포드주의의 의의는, 기존의 경제적 개인주의에서 계획 경제로의 이행이다. 유럽이 미국의 포드주의를 도입한 방식을 분석해 보면 전후 각국의 정치적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길수록 그 나라에는 선조의 유산으로 살아가는 게으르고 쓸모없는 인간들이 많아진다. 미국은 위대한 역사적 전통은 없지만 또한 사회가 지탱해야 할 이런 납덩이 같은 부담도 없다. 미국에 견실한 자본 축적이 가능했던 이유다.
포드는 생산물의 수송과 분배를 효율적으로 경영하여 임금은 높게, 상품 가격은 낮게 제공할 수 있었다. 공장 내부에서 강제와 설득이 동시에 성취 – 헤게모니 - 된 것이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작업과 생산 과정에 최적화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양성해야만 했다.
이런 생산 방식에서 분업화된 노동자들의 묶음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간주되었다. 부품을 자주 갈아끼우는 것은 곧 손실이었다. 그러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고임금이 제공되었다. 그런데 기업가 입장에서는 고임금이 쓸모없는 곳에 소진되지 않고 기계(노동자)에 재투자되어야 했다. 기계의 효율성을 저하하는 알코올은 기업가의 적이 되었다. 국가가 기업가를 대신해 그 적과 싸웠다. 금주령이다. 성문제 또한 알코올의 문제와 연관되었다. 생산과 작업의 합리화를 위해 노동자의 성적 본능이 다소 제한되어야 했다. 가족의 소중함이 강조되고, 각종 청교도적 이데올로기가 발전한다. 포드와 같은 기업가들의 청교도적인 노력에는 노동자의 인간성이나 정신성에 관한 관심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작업과 생산의 효율 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생산 방식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하는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다. 반면, 상층 계급은 이러한 문제에서 사실상 자유로웠다. 언제든 유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계급 간의 차이는 새로운 신분화를 초래했다. 유럽에 도입되고 있는 미국주의는 천박한 유행을 좇는 천박한 화장처럼 보인다.
〈철학, 역사, 문화편〉
1장 : 역사와 문화의 문제
1. 지식인
계급과 독립된 지식인이라는 관념은 허구다. 모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지식인이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지식인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력을 장악하기 위해 모든 집단은 이른바 전통적 지식인 – 성직자, 문필가, 예술가, 철학자 등 - 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복하고 융합하기 위해 투쟁하며, 또한 새로운 지식인을 길러낸다. 지배 계급에 의해 포섭되거나 계급의 목적에 따라 길러진 지식인들은 지배 집단의 대리인으로서 사회적 헤게모니와 정치적 통치의 하위 기능을 수행한다. 전통적 지식인과 구별하여 이들을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2. 교육에 관하여
1923년 무솔리니 정권은 중대한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 교육개혁의 기치는 ‘능동적인 교육’이었다. 이 교육개혁에는 어떤 면이 과장되어 있는가. 또 정치적 구호 속에 가린 진실은 무엇인가.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교육이란 일종의 순응주의를 획득하려는 교육이다. 학생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교육은 학교와 생활이 긴밀하게 연계를 맺을 때에만 가능하다. 새로운 교육개혁이 능동성을 강조할수록 그것은 학생과 교사와의 명목상의 협동을 중시하는 것이며, 그럴수록 오히려 학생은 더 수동적으로 된다.
새로운 세대를 교육하는 것은 사적인 일이 아닌 공공사업이다. 국가와 사회의 법칙은 역사상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가장 잘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말하자면 인간의 노동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드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창출한다. 노동이란 자연을 깊고 폭넓게 변형하고 사회화하기 위해 인간이 자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체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초등 교육에는 이러한 노동의 원리가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 사회와 국가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 내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이것을 매개하는 것이 노동이다. 이러한 원리를 발견해야 세계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가 과거를 토대로 하고 있고 미래는 현재를 기반으로 한다는 인간의 총체적인 노력과 희생의 진가를 파악할 수 있다.
직업학교, 즉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관심을 충족하기 위해 고안된 학교 형태가 그렇지 않은 인격형성적 학교들을 압도하고 있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처럼 새로운 형태의 학교가 민주적이라는 미명하에 등장하고 사람들의 충분한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다. 일단 겉으로는 민주적이다. 다양한 학교들 중에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별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은 쉽게 간과된다. 직업학교의 증가는 사회적 차별을 영속화할 뿐만 아니라 당면한 문제를 더욱 풀기 어려운 상태로 고착화한다. 교육을 통해 대물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들의 난립을 막고 균등한 초중등 학교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은 정신적, 육체적 훈련을 해야 한다. 노력과 지겨움 그리고 고통을 통해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노력없이 손쉽게 어떤 것을 획득하는 사회적 행태에 대한 저항감을 키워야 한다.
노동자계급 출신의 지식인 창출이 필요하다. 그들이 혁명적 정당의 유기적 지식인이 될 것이다.
3.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수고
지배 계급들의 역사적 통일성은 국가를 통해서 실현된다. 그것은 정치 사회와 시민 사회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역사가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출발하여 완전한 자율성으로 나아가는 발전의 경로를 기록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이탈리아에서 국민적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 통합 운동, 부흥)를 주도한 혁신 세력들을 검토함으로써 역사 연구의 많은 원칙들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회집단의 우위성은 지배와 지도 – 지적, 도덕적 – 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적대적인 집단을 지배하고, 동류의 집단은 지도하는 것이다. 한 사회집단은 통치권을 획득하기 전에 이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또 발휘해야 한다. 그러다가 그 집단이 권력을 행사하게 될 때, 그 집단은 지배적으로 된다. 그러나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했다 할지라도 지도는 계속해야 한다. 마치니를 비롯한 정당 지도자들은 농민을 일으켜 세워 국가 통일 과정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리소르지멘토에 민중적 특성을 부여하거나 자기들 자신에게 견고한 계급적 기초를 부여하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허약성은 나중에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프랑스의 자코뱅은 도시와 농촌을 연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대중적 작업 – 가령 외젠느 슈의 소설 – 으로 그것을 수행하였다. 농촌과 도시를 하나로 묶는 한 가지 방법은 시민군(국민군)의 창설인데 일찍이 마키아벨리가 이것을 주장하였다. 실상 현대에서 민주적인 제도 없이 의무징집제의 시민군을 창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촌의 포섭 문제는 이미 오래된 과제였다.
소위 행동당이라 불리는 세력은 이탈리아 반도에 존재하고 있던 문화적 – 문학적 수사에 불과한 - 통일을 대다수 민중의 정치적, 영토적 통일과 혼동했다. 이탈리아의 난제는 남부와 북부 사이의 심각한 괴리다. 북부에서는, 남부는 이탈리아에게 하나의 족쇄이며 이 족쇄가 없었다면 북부의 근대 산업 문명은 한층 더 발전했을 것이라는 불만에 가득찬 확신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행동당이 온건파에 대하여 반대 세력으로서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농촌 대중, 특히 남부의 농촌 대중과 동맹해야 했으며, 또 외적인 형식이나 기질 면에서만 자코뱅일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내용을 지닌 자코뱅이어야 했다.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었다면, 여러 정통주의적 지식인 층을 통해 반동적인 블록으로 묶여있던 다양한 농촌 계급들간의 연계를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자유주의적, 국민적 결속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자코뱅당이 형성되지 않은 것은 경제 영역, 즉 이탈리아 부르주아지의 상대적 허약성과 1815년 이후 유럽의 상이한 역사적 풍토 때문이다.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모두 달랐다. 정치적으로 가장 다채롭고 적극적인 활동이 벌어진 곳이 프랑스였다.
농민과 지식인으로부터 지지를 획득하는 두 방향의 활동은 상호 변증법적인 관계를 갖는다. 대혁명 당시 프랑스를 보자. 농민들이 자생적인 추진력에 따라 움직이면서 지식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반면 한 지식인 집단이 구체적인 농민정책을 설정하면 대중 속에서 더 중요한 요소가 도출되었다.
2장 : 실천 철학
1. 철학 연구
철학은 철학사와 분리될 수 없다. 철학은 종교나 상식이 될 수 없는 지적 질서다. 상식이란, 어떤 특정 시기에 일반화된 무비판적이고 무의식적인 세계 인식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상식을 만든 세력들을 타파하는 것이 지적 혁명이다. 철학은 상식(common sense)과 구별되는 양식(good sense)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상이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되었는지, 또 현재 우리의 사고 방식을 창조하는 데에 쏟는 노력 속에 어떠한 어리석음과 과오가 있었는지를 알려 준다.
철학은 소수의 전문적 지식인들의 추상적인 관념 유희가 아니라 암암리에 모든 사람들이 관계하는 구체적인 사회 활동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철학적’이라는 말은 잔인무도하고 본능적인 인간 행위를 극복하겠다는 뜻을 지닌다. 이것이야말로 상식 속에 존재하는 건강한 핵, 즉 양식이다. 따라서 대중의 철학과 학적 철학은 분리할 수 없다. 지식인들이 대중을 위한 지식인으로서 대중과 유기적 관계를 맺을 때, 곧 대중의 실천적 활동에서 생겨난 문제와 원리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고 완성해 낼 때 문화적, 사회적 블록이 형성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관성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철학은 역사적으로 되며, 한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넘어 삶이 되는 것이다. 실천 철학의 발전 과정은 지식인과 대중이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실천 철학이 발전하는 과정 속에는 끊임없이 지식인과 대중을 갈라놓으려는 움직임이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만족스러운 답변은 ‘사회 관계들의 총체’라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인간의 본질은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통일에서 시작되지는 않지만 그 자체에 통일 가능성의 근거를 지니는 ‘불일치의 일치’가 일어나는 ‘생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역사에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은 전체 인류 역사 속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생성이 철학적 개념인 반면 진보는 이데올로기다. 어떻게 진보란 이념이 나타났는가. 생성 개념 속에 진보의 가장 구체적인 측면을 구제하려는 시도가 들어있다. 생성은 진보가 보통 천박한 진화 개념과 연결되는 것을 막아 줌으로써 더 깊이 있는 발전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개별자로서 규정된다면 진보와 생성 같은 문제들은 해명되지 못하거나 아니면 순전히 언어적 차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외부 세계를 변형함으로써 동시에 스스로를 계발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의식적으로 지도하고 변형하는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 본질을 실현한다. 따라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정당은 이론과 실천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도가니라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그 역할은 더욱 강조된다.
그람시는 이 장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정통성으로 위장되는 속류유물론자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을 가한다. 그 중에서도 니콜라이 부하린의 이론을 비판하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를 실증적인 과학 – 부하린의 경우 ‘사회학’ – 의 위치로 떨어뜨리려는 어떠한 주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2.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문제
하나의 지배 계급을 구축하는 일은 하나의 세계관을 창출하는 일과 같다.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문화를 살찌우고 문화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새로운 세계관(Weltanschauung)의 창출, 독창적 세계관에 입각한 철학적 창출, 마르크스는 그것을 수행하였다. 마르크스가 창출했던 세계관은 레닌에 이르러서야 특정한 영토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기에 이른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비교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을 비교하려는 것처럼 불합리하다. 그리스도(세계관)와 바울(세계관의 조직가, 행동가) 양자는 동일한 정도로 필요하기 때문에 동일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기독교, 바울주의’로 호칭될 수 있으며 실제로 이렇게 부르는 편이 정확한 명칭에 가까울 것이다.
실천 철학은 근대 문화 형성에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실천 철학은 낡은 사고 방식을 변형하였다. 실천 철학과 여타의 철학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실천 철학 전개의 진보와 정체에 관해 쓴 로자 룩셈부르크의 글을 세밀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로자에 따르면, 새로운 철학의 창시자들(마르크스-엥겔스)이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의 요구와 나아가 다가올 시대의 요구보다 훨씬 앞서 있으며,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보다 앞서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당대에는 쓸모가 없지만 훗날 언젠가 사용될 무기들을 비축해 둔 무기고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인민대중들 사이에, 특히 종교의 영역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던 전(前) 자본주의 세계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실천 철학은 외부로부터의 여러 경향과 제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천 철학은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첫째는 실천 철학 자체의 독자적 지식인 집단을 형성하기 위해 가장 세련된 형태의 근대 이데올로기와 투쟁하는 일이며, 둘째는 중세적 문화에 젖어 있는 인민대중을 교육하는 일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독일 철학과 프랑스 혁명 칼뱅주의와 영국 고전경제학, 근대적 인생관 전반의 근거가 되는 세속적 자유주의와 세속적 역사주의 등, 실천 철학은 과거의 모든 문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실천 철학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간의 대비를 통해 변증법적으로 진행되어온 지적, 도덕적 개혁 전반의 운동을 통틀어 그 최고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실천 철학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을 합친 관계에 해당된다. 즉 실천 철학은 정치학이기도 한 철학이며, 철학이기도 한 정치학이다. 실천 철학은 역사의 주도권을 박탈당한 부차적 사회집단의 세계관이다. 이 집단은 국가의 장악 하에 있으며 사회 전체에 대해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게 될 때 비로소 지식인 집단의 발전에서 어떤 유기적 균형이 이루어진다.
실천 철학은 19세기 전반기의 최고로 발달한 문화적 토양 속에서 싹텄으며, 이러한 문화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 독일 고전철학, 영국 고전경제학, 프랑스 정치이론이다. 이들 세 운동은 하나의 새로운 통합을 위한 예비의 '이론적, 경제적, 정치적' 계기로 파악될 수 있다. 유물론과 관념론을 한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태도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현재가 보다 발전된 역사의 국면에 처해 있다고는 하나, 마르크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보다 고차적인 수준에서 실천 철학 발전을 종합하는 작업이 여전히 필요하다. 통일은 인간과 물질 사이의 모순의 변증법적 발전에 의해 부여된다. 실천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 헤겔주의의 개혁이자 발전이다. 실천 철학은 일방적이고 광신적인 일체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로부터 해방된 철학이며, 동시에 모순으로 가득찬 의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개인인 동시에 전체 사회집단으로 이해되는 철학자는 스스로 모순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을 모순의 한 요소로 정립하고 이 요소를 인식의 원리, 나아가 행동의 원리로까지 고양한다.
부하린은 <<대중 독본>>에서 실천 철학을 형이상학과 혼동함으로써 '물질'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속류 유물론에 빠진다. <<대중 독본>>은 전문적 지식이 없는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상식적인 철학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출발했어야 했다. 실천 철학을 제시하는 데에는 전통적 철학들과의 논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대중 철학이 되고자 하는 본성상, 실천 철학은 논쟁적인 형식과 연속적인 투쟁의 형식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부하린처럼 실천 철학을 일종의 사회학으로 환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엥겔스가 비판한 바 있다. 이는 하나의 세계관을 기계적인 공식으로 환원하려는 것이며 전(全) 역사를 한 손에 거뭐지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실천 철학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경험은 도식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위 인과율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사회학 이론들은 전혀 인과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대중 독본>>에는 변증법에 관한 언급이 없는데, 이는 실천철학을 역사의 새로운 국면과 사유 세계의 발달에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는 통합적이고 독창적인 철학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사유의 역사에서의 위대한 성취는 분명히 철학의 구체적인 역사화이며, 철학의 역사에의 동화이다.
* 참조
안토니오 그람씨(지음), 이상훈(옮김),《그람씨의 옥중수고1-정치편》, 거름, 1991.
안토니오 그람시(지음), 이상훈(옮김),《그람시의 옥중수고2-철학,역사,문화편》, 거름, 1999.글 :: 리드미 (01/01/2006) | 첫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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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inman | 2006/09/20 23:34 | 기본테마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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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객적 at 2006/09/21 01:22
지식의 역학은 유효하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연극적이다.
민중이 주도권을 쥐게하는 指導보다, '동원되지 않는 자리에 머무는 인間'의 지속.
유기적 지식인의 취지를 살리려면, 중앙에 모여 분리되어 있는 권위가 아니라,
마을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개념을 계몽하는 사람이나 지식인으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됨을 보이는 관계를 가질 뿐이다.
覺省을 촉발하나 지도하지 않는다.

인간 해석(지식)를 기반으로한 造성이 아니라, 인간 이해(공감)를 체득한 무위의 育성.
이상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성을(본성대로) 기르는 것.
방해하는 권력에 대한 방어적 투쟁만이 진실한 것.
공격은 구체적으로는 최선의 방법이지만, 보편적으로는 최악의 방법.
영원히 지속되는 해결되지 않는 긴장.
방임의 걱정은 무한자유이라는 허위의식의 공상.
인간은 유한하다. 걱정은 무한의 관념이 지어낸 것.
반성하는 정신을 동반한 자유는, 속지않고 동원되지 않는다.

계급사회의 근본은 지연에 있다. 농경과 文화. 기록.
지각과 기억에 의존한 구비의 습속이 인간사회의 본디 모습이다.
인류는 文明이 가득차면서 지양되는 노정이 진행중이다.
투쟁을 일으킬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임기응변.

새로운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을 지키고 키우는 것.
다만 渦중에서, 觀心을 멈추지 않고, 삶의 길에서 벗어나는
유혹(쉬워 보이거나 해결될 것처럼 보이나, 진실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길)에 빠지지 않을 뿐...

분석 추론하는 이성의 지배적 사고를
공감 반성하는 知覺으로 닦는 사람은 동원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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